[2002-6-23작성]
일전에 이번 우리의 연승 행진이 '히딩크 축구의 승리'에 불과하다는 나의 말은 아무래도 적절치 못 한 것 같다. 물론 이번 승리에 히딩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 승부차기에 앞서 어제 집중적으로 그것을 연습했다는 기사를 보면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히딩크가 극찬하듯이, 이번 승리의 주역은 감독의 지시를 따라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노력해 준 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갖게 될 자부심, 객관적 전력 우위의 팀을 맞아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자신감, 쌓아온 축구 실력과 경기 경험 등은 결코 허무하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또한 그 뒤에는 정말 열심히 성원하고, 노력한 한국 축구계가 있다. 히딩크를 데려 오고, 수많은 연습 경기와 훈련 경기를 주관하고, 돈을 투자하고, 노력을 쏟아 부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 월드컵 문을 두들기며, 끊임없이 1승을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축구인들의 한과 땀이 서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람들이 갖게 될 자긍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자긍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매 경기, 매 골에 가슴 조리며 집에서, 거리에서, 경기장에서 응원해 온 국민들이 있다. 한 번의 슛에 울고 웃으며 안정되고 자신감 넘치는 폴란드전 승리부터, 믿기지 않는 오늘의 스페인전 승리까지 애태우며 한마음으로 성원해 온 국민들. 선수 가족들, 기자들 등등...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며, 우리 축구팀을 사랑한다. 경기가 극적인 승리로 끝날 때마다, 나도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들은 '붉은 악마'들이다. 한국 축구가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늘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고 성원해 온 사람들이다. 자신의 직업이 달리 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쪼개어 응원을 준비하고, 축구장을 찾아 응원해 온 사람들, 이 사람들이 정말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만하다. 이 붉은 악마가 오늘의 응원 주제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일전에 이번 우리의 연승 행진이 '히딩크 축구의 승리'에 불과하다는 나의 말은 아무래도 적절치 못 한 것 같다. 물론 이번 승리에 히딩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 승부차기에 앞서 어제 집중적으로 그것을 연습했다는 기사를 보면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히딩크가 극찬하듯이, 이번 승리의 주역은 감독의 지시를 따라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노력해 준 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갖게 될 자부심, 객관적 전력 우위의 팀을 맞아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자신감, 쌓아온 축구 실력과 경기 경험 등은 결코 허무하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또한 그 뒤에는 정말 열심히 성원하고, 노력한 한국 축구계가 있다. 히딩크를 데려 오고, 수많은 연습 경기와 훈련 경기를 주관하고, 돈을 투자하고, 노력을 쏟아 부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 월드컵 문을 두들기며, 끊임없이 1승을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축구인들의 한과 땀이 서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람들이 갖게 될 자긍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자긍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매 경기, 매 골에 가슴 조리며 집에서, 거리에서, 경기장에서 응원해 온 국민들이 있다. 한 번의 슛에 울고 웃으며 안정되고 자신감 넘치는 폴란드전 승리부터, 믿기지 않는 오늘의 스페인전 승리까지 애태우며 한마음으로 성원해 온 국민들. 선수 가족들, 기자들 등등...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며, 우리 축구팀을 사랑한다. 경기가 극적인 승리로 끝날 때마다, 나도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들은 '붉은 악마'들이다. 한국 축구가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늘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고 성원해 온 사람들이다. 자신의 직업이 달리 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쪼개어 응원을 준비하고, 축구장을 찾아 응원해 온 사람들, 이 사람들이 정말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만하다. 이 붉은 악마가 오늘의 응원 주제로 내세운 것이 바로,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외신에 따르면, 일본과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이, '아시아의 대표'로서 한국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남미에 이어 '아시아'가 3번째 월드컵 출전 대륙이 되었다. (미국이 1회 대회에 4강에 올라 북미도 생각할 수 있으나, 1회는 좀 예외로 하자) 특히 공동 개최국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응원은 대단한데,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한국 응원단이 보여주었던 구호, '함께 프랑스로 가자'에 감동한 일본인들이 부러움과 질시를 응원에 담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다고.
언제나 중국과 일본에 치이며, 열등 의식에서, 그들을 눌러버리려고만 벼뤘지, 한 번도 그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동남 아시아, 서남 아시아의 나라들까지는 몰라도, 한/중/일은 서양 세계에 나가 보면 놀랄 만큼 유사성을 많이 갖고 있는데, 왜 나는 항상 '한/중/일'이 비슷하게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며 다르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 왔을까? 일본이 터키에게 지며 빗속에서 쳐져 있을 때, '고거 쌤통' 하며 고소해 했는데, 막상 대부분의 한국민이 일본의 패배를 반긴다는 보도에 일본 사람들은 서운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했더랬다. 오늘도 열심히 한국을 응원한다는 일본 사람들 반응에, '가해자'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까지 나는 그 생각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답답하기도 하다. 이제는 일본을 용서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성급한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는 한국 축구팀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들은 온 아시아의 사랑을 받을 만큼 노력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수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축구 팀의 나라, 한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독일이나 브라질과는, 심판 구설수가 없는 멋진 경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너무 멋있지 않냐?
외신에 따르면, 일본과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이, '아시아의 대표'로서 한국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남미에 이어 '아시아'가 3번째 월드컵 출전 대륙이 되었다. (미국이 1회 대회에 4강에 올라 북미도 생각할 수 있으나, 1회는 좀 예외로 하자) 특히 공동 개최국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응원은 대단한데,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한국 응원단이 보여주었던 구호, '함께 프랑스로 가자'에 감동한 일본인들이 부러움과 질시를 응원에 담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다고.
언제나 중국과 일본에 치이며, 열등 의식에서, 그들을 눌러버리려고만 벼뤘지, 한 번도 그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동남 아시아, 서남 아시아의 나라들까지는 몰라도, 한/중/일은 서양 세계에 나가 보면 놀랄 만큼 유사성을 많이 갖고 있는데, 왜 나는 항상 '한/중/일'이 비슷하게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며 다르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 왔을까? 일본이 터키에게 지며 빗속에서 쳐져 있을 때, '고거 쌤통' 하며 고소해 했는데, 막상 대부분의 한국민이 일본의 패배를 반긴다는 보도에 일본 사람들은 서운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했더랬다. 오늘도 열심히 한국을 응원한다는 일본 사람들 반응에, '가해자'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까지 나는 그 생각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답답하기도 하다. 이제는 일본을 용서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성급한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는 한국 축구팀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들은 온 아시아의 사랑을 받을 만큼 노력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수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축구 팀의 나라, 한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독일이나 브라질과는, 심판 구설수가 없는 멋진 경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너무 멋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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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21 작성]
히딩크에 관한 책이 벌써 나왔더라. 차례를 보니까 꽤 읽고 싶은 마음이 들던데, 출판계의 신속성에 놀랬고, 아마 엄청나게 팔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승리는 한국 축구의 승리가 아니라 '히딩크' 축구의 승리라고 하면, 너무 할래나? 모든 것이 그였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가 감독으로 초청되고 계속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나? 그것은 '위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진정한 실력자가 인정을 받는 시기는 '위기'에만 가능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가 아니었으면 성웅 이순신은 없다. 심지어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조금만 안정이 되면 가차없이 숙청당하게 되는 것이 연줄없는 실력자의 운명이다.
축구계와 국민이 그를 가만히 놔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축구계와 국민이 다들 위기 의식을 느꼈고 이제와서 바꾸기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을 지휘자로 두고 있는 국내 오케스트라에선 진정한 실력자가 클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여기엔 특별한 '위기'가 없기 때문이다. 누나 말에 의하면, 한국 오케스트라의 개별 연주자들은 정말 세계 어디 내 놓아도 뛰어난 사람들인데, 오케스트라는 그렇지 않단다. 학연, 지연 등으로 복잡하게 연결 되어 있고, 그런 것들로 안정되게 자리가 보장되어, 진정한 실력 경쟁이 되지 않고, 선/후배 사이의 엄격한 룰들이 모두 적용되며, 외국 지휘자들이 거기서 특별한 조치를 하기에는 너무 벽이 두껍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예술 감독이나 악장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가 히딩크라면,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필사적으로 한국을 탈출해야 한다. 그게 죽지 않는 길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끝난 다음에도 장수가 어리버리 돌아 다니고 있으면, 모함으로 죽기 딱 알맞다. '위기'가 끝나면, 그 다음은 '시스템'이 권력을 잡을 차례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마지막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초야에 묻혔다는 소문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히딩크 이후에 누가 감독을 맡을 것인가? 아마도 히딩크의 스타일을 흉내내는 어떤 사람이 한 일년 죽도록 고생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박종환 스타일의 사람이 감독이 될 것이라고 본다. 히딩크 후임자는, 히딩크 만큼의 권한, 능력도 없고, 틀림없이 각종 학연, 지연 등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미 그 자신이 학연/지연에 의해 감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딩크 시스템을 거스르기도 힘들 것이고. 선수들의 감독에 대한 기대는 높아 있고. 따라서 그는, 히딩크 시절, 히딩크 시스템에 의해 무명->유명으로 전환된 새로운 스타들의 권력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다. 히딩크 시스템이 배출한 새로운 실력자들은, 히딩크가 있을 때는 진정한 실력자로서 권력자겠지만, 히딩크가 사라지고 나면, 기존의 우리 사회가 전형적으로 그렇듯 노력하지 않는, 즉 실력없는 권력자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히딩크 시스템이 실패했다면, 이 사람들 인생은 끝이었다. 히딩크 믿고 까불던 안정환, 설기현, 이천수 등등, 뜨거운 맛을 한 번 보게 된다. 혹시 이러한 혁명적인 분위기의 한 가운데 있더라도, 잠시 왔다가 사라질 사람을 너무 믿고 따르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것이 고래로 부터의 동양의 가르침이다.
후임으로 외국인 감독이 오더라도 사태는 비슷하게 될 것이다. 아마 한국의 오케스트라 비슷한 분위기가 1년 후에는 형성되겠지. 감독은 기술만 지도하고, 진정한 한국인 권력자가 뒤에서 모든 연줄을 쥐고 있는 형국이 될 것이다. 물론, 아주 뛰어나고 카리스마가 이미 있는 사람이 오면 어떨지... 아마 조금은 더 연장될 수도 있겠다.
이런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학연, 지연, 선후배 연공 서열 등 각종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치명적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뭐, 일각에선 반성하자, 고치자 말도 많지만, '위기'가 없는 한 절대 고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그렇다고 매번 위기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결코 그 문제에서 벗어 날 수 없다.
'하면 된다?' - 웃기지 말자. 이 문제는 해도 안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나? 있다. 이것은 '인구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이 분명하므로 해결도 분명하다. 방법은 '통일' 아니면 '대동아 공영권' 뭐, 하여간 인구 규모, 즉 전체 경쟁 규모를 늘려야만 한다.
'너 선배 그렇게 무시하다가 찍히면 한국에서 살아날 것 같아? 이 바닥 아주 좁아, 어디 간들 무사할 것 같아?'
'너 교수 무시하고 학교 생활 하다가, 어디든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제자들이 거의 모든 주요한 회사에 다 깔려 있어'
교수랑 한바탕 하고 나와도 갈 수 있는 다른 박사 과정이 충분히 있고, 선배와 싸우고 나와도 갈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좁은 연줄로 구성된 회사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 대학 축구 팀이 충분히 많아서, 고대 출신 감독이 되더라도, 고대에서 2명 이상 뽑기 어렵고, 따라서 연대에서 2명 이상 넣으라는 압력을 행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 된다면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기 학교 출신 1명 정도 그냥 넣어도 '연줄'이라는 문화가 형성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청산해야할 문화인가?
서구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자식 신세를 지기 싫어하지만, 우리는 자식 신세를 당연히 지려한다. 우리 부모님도 20년 전에는 자식신세 안 진다고 그러셨지만, 요즘은 언제 며느리가 해주는 밥 먹어보나를 목놓아 기다리시는 중이다. 신입때 '과장'들은 도대체 뭐하나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빨리 나도 내 아래에 사람들 좀 두고 이런 잡무에서 벗어나 봤으면 하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선배' 공경해 두면, 나중에 '후배'에게 대접받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다. 서양에 비해서, 젊었을 때 뭐든 많이 하고, 나이 들 수록 급격히 안 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섹스도 그렇게 된다. 이러한 연공 중심의 시스템은, 나이에 따라 육체적인 정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동양인에게 더욱 적합한지 모른다. 능력없다고, 나이 많은 사람이 짤리는 거 보면 좀 안됐지 않나? 나도 젊었을 때 고생 했으니, 나이 들면 좀 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나?
학연/지연은 극동아시아에는 공통적인 추천 시스템이다. 서양 애들은 이것을 referal system으로 객관적인 듯이 운영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것도 추천 시스템이고... 물론 시스템의 내용을 보면 다르지만... 우리는 처음에 100점을 주고 문제 있을 때마다 깍는 시스템이고, 걔네들은 처음에 0점을 주고 잘했을 때마다 더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같은 추천 제도라도, 우리는 '어 학교 후배야? 그럼 추천해 주지' '어 내 수업 들었어? 기억은 안 나지만 추천서 써와 봐, 싸인해 줄께' 뭐 이런 대화가 충분히 가능한 이유가, 찍히지만 않으면, 그 사람은 100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선, 공을 쌓기 보다는 찍히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튀지 마라" 그것을 통해 공을 쌓아봤자 남들과 비슷한 101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돼서 찍히면, 대부분 남들보다 떨어지는 60점이다.
이식형 말을 다시 인용하면, 경쟁이 심하고 사람이 많을 때는 튀어야 살지만, 경쟁이 약하고 사람이 적을 때는 남을 깎아야 산단다. 즉 우리의 인구 구조가, 그리고 우리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튀는 것" 보다는 "찍히지 않는 것"을 우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학연/지연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추천 제도다. 즉, 이 사람은 '튀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에 대한 보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 문화는 유지될 수 밖에 없고, 또한 현재의 우리 상황에서 가장 최적화된 해법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최적화'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학적인 의미다)
휴... 너무 길다. 쓰는 나도 지겹다. 이식이형은 길어서 안 읽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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