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4-14 작성]
Death Valley (지도)
Sand Dunes
빌
린 자동차는 여태 100마일 정도(160km) 달린, 아직 번호판도 달지 않은 새 차였다. 아침 일찍 8시 30분쯤 출발해서
95번을 따라 달려 Beatty에서 374번으로 꺾었다. 앞뒤로 차가 보이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 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
auto-cruise를 걸어 놓고 달리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운전대도 그냥 형식적으로 잡고 있기만 할 뿐.
라스베가스
는 이번이 두 번째다. 화려한 호텔의 인공적인 장식들은 신기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을 그리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 가는
Death Valley는 처음이기도 할 뿐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도 나를 설레게 한다. 다만 적절한 음악 CD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곳을 먼저 가 보고 추천한 김 경아씨가 가면서 들었다는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을
공항에서라도 샀어야 하는건데...
차를 달리면서 저 앞쪽 길은 물에 젖은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말라 있고, 또 저 앞에 물이 있는 것 같은데 가보면 말라 있었다. 이런게 '신기루'인가?
제
일 처음 들린 곳은 'Hells Gate'라는 곳으로 374번 도로 중간에 있다. 여기에 지도와 화장실이 있으며 unique
vista를 제공한다고 한다. 잠시 쉬다가 계속해서 374를 따라 남으로 내려와 190을 타고 Panamint Springs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Death Valley의 Top 5안에 든다고 할 수 있는 Sand Dunes를 보다. 사막을 휩쓸고
다니던 바람이 속도가 늦어지는 장소다. 바람의 속도가 늦어지면 같이 다니던 모래들은 할 수 없이 땅에 가라 앉아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Sand Dune이다. 낮에도 그 완만한 곡선과 그 곳에 반사된 빛깔이 아름답지만, 설명서 대로 달빛에 본다면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 Sand Dune을 지나면 Stovepipe Wells라는 마일이 나오고 이 마을 바로 옆에 Mosaic
Canyon이 있다. 비포장 도로이긴 한데, 들어가 볼 만하다. 암석이 깎여 대리석처럼 느껴지도록 맨들맨들해진 곳이다. 나는
여기서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다가 계속 190을 따라 남서쪽으로 내려갔다.
Salt Creek도 비포장이긴 하나, 그리 심하진 않다. 걸어서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만들어져 있고 바닷물만큼 짠 시냇물에서 산다는 desert pupfish를 볼 수 있다.
190
을 계속 따라 내려오면 Furnace Creek이 나오는데, 이곳이 인근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 한다. 종합 관광
안내소에서 Slide Show도 보고, 박물관도 구경하고, 기념품도 샀다. 기름도 넣었는데, 갤론당 $2.30이나 한다.
(보통은 $1.20 정도)
정작 Furnace Creek 자체는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곳을 지나 178로 빠져서 곧장 Bad Water로 향했다.
Golden Canyon, Aritst Drive, Golf Course는 올라오면서 볼 작정이었다. 경치로 말하자면 다른 곳
만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특별한 느낌을 준 곳이다.
바다와 이곳 Badwater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물이 더 이상 흘러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곳으로 더 흐를 수 없는 물은 고여서 증발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꾸 증발이 되면 물 속의 염분 농도가 높아져서 짜지는 것이다. 따라서 바닷물도, 이곳 Badwater의 물도 모두 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물도 많이 흘러 들어오지 않고, 또 증발도 빨리 되기 때문에, 눈으로 그냥 보기에 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통 하연 소금의 바다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먼 곳까지 혼자 나가 사방을 둘러보다 주저 앉았다.
언제나
바다는, 내게 쉬는 곳이었다. 산속 숲에서 이슬로 시작했든, 들녘에 내리는 비로 시작했든 땅에 내려온 물들이 시내로, 지하수로,
수돗물로, 하수로 그렇게 갖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가 큰 강을 이루고, 강물이 천천히 흐르다가 물이 모두
모여 쉬는 곳이 바다가 아니었던가? 세상의 좁은 근심과 옹졸함과 인색함을 버리고 하해와 같은 큰 마음이 되는 곳이 바다
아니었던가? 바다를 그렇게만 생각하던 나에게, 오늘 이 곳 Badwater는, 바다가 물의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이 더 이상
흘러갈 수 없는 곳이 바다다. 그래서 짜지고 뒤틀리는 곳이 바다다.
무덤으로 온 물 중에 일부에게는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환생의 장소가 바다이지만, 일부에게는 수천 미처의 심연에 잠겨 차디찬 온도와 가혹한 수압을 영겁의 세월동안
견뎌야하는 지옥의 장소가 바다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거다. 나는 이제 새로운 의욕이 필요하다. 지금 읽고 있는 Alan
Cooper의 '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 책이 나를 더 자극해 주고 있다. 그래, 세상을
바꾸자.
사방을 둘러보니 온 세상에 눈이 온 것처럼 하얗게 소금이 쌓여 있다. 땅을 조금만 파 보면 물이 고이는 것으로 보아
굳은 소금층 아래에는 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수면 보다 279 feet 아래, 즉 해발 -85m의 낮은 곳이며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이곳에서 세상을 다시 보다. 이미 한참 멀어진 저 쪽 도로에는 아직도 내가 세워둔 자동차와, 멀리 오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산맥의 발자락에 아른거리고 있다.
다시 북쪽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Natural Bridge,
Devil's Golf Course, Golden Canyon 등을 보았다. 그 중 인상 깊은 것은 Artist's Drive
도중에 있는 Artist's Palette이다. 형형 색색의 물감을 산 위에 발라 놓은 듯한 풍경인데, 갖가지 광물이 불균등하게
뒤섞였기 때문이란다. 참 적절한 이름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볼 때가 가장 아릅답다고 할
수는 없겠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처음 사람들이 주차하고 구경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palette가 아니다.)
다
시 190을 타고 동남쪽으로 내려와 자브라스키 포인트에 오르다. 이 때가 대략 오후 5시 경이었는데 해질녘의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Tracking 코스로는 Golden Canyon에서 이곳 자브라스키 포인트까지 연결되는데, 자동차로는 많이 둘러온
셈이다. 언덕에 올라 앞을 내다보면 복잡하고 날카로운 산들이고, 뒤를 돌아보면, 따뜻한 저녁 햇살을 받아 하품을 하는 듯한, 황색
구릉이다. 우리 나라의 모듯 것에 비해 서양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실 구릉이라고 하기에는 굴곡이 좀 더 심하고, 윤곽이
뚜렷하고, 저녁 햇살에 명암이 분명하다.
지
는 해를 보며 약간은 조급한 마음으로 Dante's Peak를 향하다. 이곳은 지는 해에 보기에는 좋지 않은 듯 하다. 한 낮이나
아침녘에 오히려 잘 보일 듯 한데, 세숫대야처럼 움푹 들어간 Death Valley 전체를 보려면 광원이 좀 더 높은 곳에
있거나, 적어도 등 뒤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능선을 따라 더 내려가
보면 좀 더 넓은 지역을 볼 수 있다. 이 곳이 좋은 이유는 Death Valley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
오는 길은 190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Death Valley Junction에서 127을 타고 북쪽으로 통하는 길로 잡았다.
이렇게 하면 373을 통해 Lathrop Wells로 가서 95와 합쳐져 다시 라스베가스로 갈 수 있게 된다. 이제 밤이 어두워져
앞뒤 분간이 잘 가지 않지만 길은 근 한시간을 달리도록 커브가 없다. 2차선의 도로인데도 75mph가 (120km/h) 제한
속도다. 80 쯤으로 계속해서 달리다 가끔씩 길 주변에 사람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라스베가스 근교에서 저녁을 대충 때운후
호텔로 돌아왔다. 약 13시간에 걸친 Death Valley 여행이 끝났다. 이것으로 이번 여행의 목적도 달성한 셈이다. 출장
본연의 목적이었던 전미 방송 협회의 전시회인 NAB... NAB? 천천히 보지 뭐.
Death Valley 공식 사이트(
http://www.americansouthwest.net/california/death_valley/national_pa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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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르야 답글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볼 때가 가장 아릅답다고 할 수는 없겠다."
아리랑 게시판에서 글을 읽다 보면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생각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제법 자주. 큰 즐거움!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정보를 대하는 순간 재용이의 머리 속에는 수없이 다른 방향에서 벽을 바라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떠올랐을테고 그 각자 사른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 공정한 판단의 권리를 주고 싶어하는 착한 마음이 자극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을 모두 나름대로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해야만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성질의 사물을 대하는 것 자체로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것조차 느껴진다.
다양한 관점의 가능서 중에서 그래도 자신이 본 것을 가장 아름다왔을 것이다 주장하는 대신에 타인의 관점을 제한하지 않는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살며 이렇듯 남에게 나와 똑같은 판단의 권리를 주고 그것을 내 것과 같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 알고 있으리라.
평균적인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서에 실린 그저 하나의 정보일 뿐이었을텐데삶의 성찰로 익어진 한 인간의 상념이란 과정을 통과하고 나온 Output이 눈부시다.
생각이란 한 끝을 뒤집는 것으로 전혀 다른 차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한 끝을 자유자재로 뒤집을 수 있는 가벼움을 얻기가 그리도 힘든 것이다.
그런데 재용아 네 아바타가 팔에 두르고 있는 완장에는 뭐라고 적힌거니
내가 보기에는 NL이라고 적힌 것 같은데
네 비당파적인 글에 비해 아바타가 너무 당파적인 의상과 자세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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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답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해.
재용이의 글을 읽으면서 재용이 특유의 느린 듯한, 약간 끊길 듯 끊길 듯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래서 끝까지 듣게되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아주 기분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 게다가 재용이의 얼굴도 생각이 나는군. 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