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이 재용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신변잡기'에 해당되는 글 30

  1. 2013.12.26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2. 2013.12.26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3. 2013.11.22 아버지
  4. 2013.11.13 내 몸에게 경고한다
  5. 2013.11.13 몸값 올리는 방법
  6. 2013.10.27 확신의 함정
  7. 2013.10.23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8. 2013.10.06 살아 남은 자의 슬픔
  9. 2012.08.06 교수 생활
  10. 2012.08.06 Death Valley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2013. 12. 26. 01:55 | Posted by 이 재용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샤워를 하다가 큰아들이 물었다.(큰아들은 자기가 샤워할 때 내가 옆에 있어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걸 매우 좋아한다) 아주 짧은 갈등 끝에, 나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선물이 와 있는 걸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다시 묻길래 또 잠깐 갈등 끝에,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아들은 나에게 예를 들어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할머니는 가족이 다같이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시면서 '이 모든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느냐? 아빠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부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 앞에는 음식이 있고, 할머니가 그 음식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더니 녀석은 종교 이야길 물었다.

아빠는 제가 종교가 있으면 좋겠어요?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종교가 없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빠는 저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까 더 많이 알거 아니예요?' '흠... 세상엔 더 오래 살아도, 더 많이 배워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종교 같은거' 그 때쯤 아들은 샤워를 끝냈다.

예전엔 아이가 생기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얘기해 주리라 믿었다. 예를 들어 산타 같은 환상을 갖게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종류의 사고 방식을 처음부터 갖지 않도록. 그런데 요즘은 되도록이면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놔두려고 한다. 스스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그러다보면 문제는, 때로는 내 신념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애매하게 얼버무리거나 괴변을 늘어놓게 된다.
좋아요 ·  ·  · 5분 전 서울특별시 근처 ·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자생존  (0) 2014.02.26
언니야 반말  (0) 2013.12.26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0) 2013.12.26
아버지  (0) 2013.11.22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2013. 12. 26. 01:52 | Posted by 이 재용


이제 사흘만 기다리면 큰 아들과 내가 1년중 가장 기다리는 12월 25일이 된다. 큰 아들은 자기가 받고 싶던 선물을 받기 때문에 기다리고, 나는 해가 다시 길어지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으나, 올해는 특별히 더 기다려진다.

지난 3년간 30만원 가까이 하는 레고 기차를 갖고 싶었지만, 매년 가을 무렵부터 큰 아들에게 암시를 넣어도, 녀석은 매년 크리스마스에 레고 기차가 아니라 다른 것을 원했다. 마트에 가서 내가 그 앞을 서성거리다가 레고 스타워즈나 레고 히어로 팩토리를 질리도록 살펴보고 난 큰 아들이 다가 오면 손으로 저 높은 선반 구석에 먼지 맞고 있는 레고 기차를 가리키면서, 저게 있으면 얼마나 집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가를 설명했건만, 녀석은 그 순간만 같이 키득거리지, 집에 돌아와 제 엄마가 올해 산타에게 뭘 받고 싶은지 알아내는 정례 유도 심문에는 매번 엉뚱한 것을 대답하곤 했다. 

이제 나이가 들은 건지, 아니면 지난 3년간의 암시가 통했는지 올해 마침내 큰아들이 산타로부터 '레고 기차'를 받고 싶다고 제 입으로 순순히 말하였고, 레고 기차는 현재 온라인 구입 절차를 거쳐 집안 모처에 숨겨져 있다.

그간의 관례를 보면, 일단 시리즈의 하나를 집에 들여 놓으면, 녀석은 순순히 다음 것을 찾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레일이라든지, 추가 기차(이번에 사는 건 화물 기차라 여객 기차가 필요) 등은 자연히 2014년 1년에 걸쳐 갖추어질 것이고, 여기에 둘째 녀석이 조금만 호응을 해 준다면(기차가 돌아가는 순간에 팔짝팔짝 뛴다든지 하는 반응) 의외로 좀 더 급속히 진행될 수 있다.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니야 반말  (0) 2013.12.26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0) 2013.12.26
아버지  (0) 2013.11.22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
몸값 올리는 방법  (0) 2013.11.13

아버지

2013. 11. 22. 00:27 | Posted by 이 재용

보통은 꿈을 전혀 꾸지 않는다.

누우면 바로 잠들어 버리고, 깨우면 벌떡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아마도 꿈을 꾸겠지만 기억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아주아주 드물게 일어나서 꿈이 기억나는 경우가 몇 번 정도는 있었지만 정말 드문 일이다.


그런데 얼마전 요로 결석 이후에 의식적으로 물을 많이 먹다보니, 밤에 자다가 (화장실 가기 위해) 간혹 깨는 경우도 생기고 무언가 자면서 꿈 비슷한 것을 꾸기도 한다. 잠에서 깨면 기억이 없긴 하지만 자면서 무언가 계속 상황에서 내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피곤하기만 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한 것 같아 좀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꿈 속에서 너무 그리운 분을 봤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지 10년 조금 넘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줄지를 않는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누군가에게 간절히 매달리고 싶을 때,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찾는데, 어떤 때는 정말 힘들어서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아버지 품에 안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서 엉엉 울 때도 있었다. 


다른 식구들 꿈에는 간혹 나타나시기도 해서, 식구들이 모였을 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혀 꿈을 꾸지 않는 스타일의 잠을 자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했다. 그런 아버지를 오늘 만났다.


베이지색 잠바를 입은 채, 나를 향해 편안히 웃으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꿈 속에서 미처 가서 안아 보려는 생각을 못 한 것이 너무 후회되긴 하지만, 가까이서 나를 보시며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너무 반갑고 좋아서 막 울었다. 꿈 속에서 울다가 잠이 깼는데, 일어나보니 실제로 내가 울고 있었던 것처럼 눈에 눈물이 가득차 넘쳐 흘렀다.


또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너무 기분이 좋다.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0) 2013.12.26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0) 2013.12.26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
몸값 올리는 방법  (0) 2013.11.13
확신의 함정  (0) 2013.10.27

내 몸에게 경고한다

2013. 11. 13. 23:57 | Posted by 이 재용
내 몸에게 경고한다. 영양분 남는다고 자꾸 배나 뒷목에 저장 좀 하지 말란 말이다. 삼겹살이나 돼지 목살 만들 것도 아니고...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0) 2013.12.26
아버지  (0) 2013.11.22
몸값 올리는 방법  (0) 2013.11.13
확신의 함정  (0) 2013.10.27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0) 2013.10.23

몸값 올리는 방법

2013. 11. 13. 23:53 | Posted by 이 재용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사장이 되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일들인데, 정말 자기가 사장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드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도 여러 명이 있다. 난 직원일 때 그렇게 안 했던 것 같다. 정말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데 '손님이 불러서 하면 심부름, 내가 찾아가면 서비스'라는 말이 모든 것을 요약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런 얘기를 사장이 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사장이 말하면 착취, 스스로 깨달으면 자기계발'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다. ㅎㅎ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0) 2013.11.22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
확신의 함정  (0) 2013.10.27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0) 2013.10.23
살아 남은 자의 슬픔  (0) 2013.10.06

확신의 함정

2013. 10. 27. 20:59 | Posted by 이 재용

확신의 함정

-'자기 개발'이라고 쓴 글을 보면 언제나 '흠 뭔가 교육을 덜 받았군.' 하며 속으로 살짝 비웃어 주거나, 잘 아는 사람이면 부드럽게 자기 '계발'이라고 고쳐주곤 했다. 하지만 얼마전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에서 본 뒤, 사전을 찾아 보고 둘 다 맞는 말이며 실은 대개의 경우 '개발'이 맞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Valet Parking'을 보고 무한 도전의 한 멤버가 '발레 파킹'이라고 발음하자 유재석이 비웃으면서 '고전 무용하면서 주차하는 거냐?'라고 놀리는 장면을 보고 속으로 비웃으면서 '불어에서 온 단어라 발레가 맞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웹스터 사전을 찾아보니 14세기 불어에서 넘어온 이 단어는 '밸럿' 파킹이 더 흔한 발음이다. 물론 좀 아는체 하는 자들은 어원의 발음을 살리겠으나, 서로 어느 쪽이 더 맞다고 비웃는다는 것 자체가 얕음의 결과인 것이다.

오늘 친구의 페북 글에서 '확신의 함정'이란 말을 보고 또 다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의심하기로 한다.


https://www.facebook.com/arangyi/posts/10202511491408743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
몸값 올리는 방법  (0) 2013.11.13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0) 2013.10.23
살아 남은 자의 슬픔  (0) 2013.10.06
교수 생활  (0) 2012.08.06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2013. 10. 23. 00:56 | Posted by 이 재용
10/19 작성
뒤를 돌아봐야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나 누가 결정해 줄 수 없을까 해서.
앞에서부터 뒤로 넘기고 뒤로 넘겨서 내게 온 이슈들. 이제 시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도 더 뒤로 넘길 수 없는 상황까지 온 문제들. 

CEO는 대개 마지막에 결정하는 사람이다. 뒤에 아무도 받쳐줄 사람이 없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다 져야 하는. 하루에도 수없이 내게 결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빠르게 결정해야하기에,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힘들다. 대표를 오래하면 판단도 빨라지지만 성격도 급해진다고 한다. 성질도 더러워지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도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동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결정을 해야하는 일이 많기에 그 중압감은 대개 외로움으로 쉽게 변한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에서 외로움을 달랜다고 하기도 한다.

오늘도 어떻게 보면 매우 중요한 결정 대여섯가지를 했다. 한 달에서 몇 달간 결정하지 못 하고 미루어 오던 결정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우리 회사의 방향을 0.5도 바꾸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3-5년 뒤 우리 회사의 위치를 크게 바꾸어 놓을 만한 일일 수 있게 된다. 무섭다.

그래서 이런 결정들을 해 나가는 것이 항상 힘들다. 무엇이 답인지도 모른채 계속 책임질 결정들을 해 나가는 것이. 더군다나 그런 결정들은 또 나와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나누어지기까지 해야한다. 내가 더듬더듬 결정한 일이 어느새 어떤 사람들에겐 나아가야할 샛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 그 일이 잘못되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야 한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모르니 차라리 온 몸으로 하루 종일 일에 파묻혀 해결하고 싶지만, 나에겐 가족이 있다. 애매하게 혹은 비겁하게 어느 시점 나는 '모든 것을 다 바쳐' 회사를 운영하지도 않게 된다. 그러니 그렇게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가 생각한 비전을 나누고, 사람들을 움직이고 함께 꿈을 꾸도록 만든다는 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무서운 일일까? 내겐 상상하기 힘든 이런 일을 간혹 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은석,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지도 벌써 한 해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CEO들에게 연민을.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값 올리는 방법  (0) 2013.11.13
확신의 함정  (0) 2013.10.27
살아 남은 자의 슬픔  (0) 2013.10.06
교수 생활  (0) 2012.08.06
Death Valley  (0) 2012.08.06

살아 남은 자의 슬픔

2013. 10. 6. 02:48 | Posted by 이 재용

20대때 늘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리고 그의 대표 시 '살아 남은 자의 슬픔' - 우연히 다시 찾아보니, 너무나도 인상 깊은 이 제목은 한국어 번역자의 창작이었지만, 여전히, 정말 적절히 잘 번역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의 후반부는 다소 오역에 가깝다는 걸 발견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가 아니고, '적자 생존' 즉 좀 더 적합한 자가 살아 남는다여야 한다. 그가 강했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좀 더 잘 어울렸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고 말했기 때문에 괴로왔을 것이다. 그가 겪은 나치의 파시즘, 미국의 자본주의, 그리고 마지막 동독의 공산주의까지, 그가 겪은 체제들은 거기에 '잘 어울린다'는 말 만으로도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의역'이라 하기엔 너무 과했다.

Ich, der Uberlebende / Brecht, Bertolt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I, the Survivor

I know of course: it’s simply luck
That I’ve survived so many friends. But last night in a dream
I heard those friends say of me: ‘Survival of the fittest’
And I hated myself.



살아 남은 자의 슬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https://www.facebook.com/arangyi/posts/10202342841832609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확신의 함정  (0) 2013.10.27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0) 2013.10.23
교수 생활  (0) 2012.08.06
Death Valley  (0) 2012.08.06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0) 2012.08.06

교수 생활

2012. 8. 6. 21:14 | Posted by 이 재용

[2002-3-13작성]

교수생활


이라고 제목을 붙이려니... 제목이 마치 에로 비됴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데...

 

지난 주부터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겸임 교수래봐야 일주일에 하루 나가서 강의하는 것이 고작이니, 시간 강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학교 쪽 강사료 라는 것이 꽤나 싼데, 다행히 내 경우는 정보통신부 지원 자금을 받게 선정이 되어서, 매달 학교와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

 

인터넷*미디어 학부의 멀티미디어 전공 학생들에게 2학년 전공 필수 과목인 멀티미디어 개론 수업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첫 전공 개론 수업이니까 과에서 무척 중요한 과목을 맡은 셈이다. 물론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건국대학교는 우리 집에서 7호선으로 바로 연결이 되니까 교통도 편한 편이고, 주차장을 제공하니까 차로 가기도 편하다(그냥 강북 강변을 따라 쭉 가면 되니까...) 학과는 좀 낡은 건물에 위치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강의실이 있는 건물은 '새천년관'이라 불리는 꽤 현대식 빌딩(!)이고, 그 앞으로 넓은 호수가 펼쳐져서 참 마음에 드는 캠퍼스다.

 

수업은 수요일 1시간, 금요일 2 시간인데, 겸임 교수는 3시간 연강을 하지 못 하게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수요일 수업을 없애고, 금요일날 3시간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가 수업 들을 때 어떤 교수가 이런 식으로 시간표에 없는 수업 통폐합을 첫 시간에 발표했는데, 그 사람도 그런 편법을 부린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표가 꽉 짜여진 학샏들 입장에선 참 싫은 일이었다. 물론 나야 한 번이라도 덜 간다면 좋은 것이었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니, '교수의 입장'과 '학생의 입장'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 되었고, 또 마지막 학교 생활이었던 유학 생활은 한 번도 교수와 학생의 차이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 수업료가 3천만원이고, 내 생활비까지 생각해 보면 한 과목당 수강비가 적게는 1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인 셈이었으니, 내가 어찌 한 번에 20만원짜리 수업을 빠질 생각을 하겠는가? 학생들도 당연히, 수업의 양과 질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 보면, 이건 소비자로서의 권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인우드에서 경영자 생활을 하면서, 예전에 노동자로서 느끼지 못 했던 것을 정말 많이 느꼈던 것처럼, 지금 건국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차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 처음 강의 계획서를 마련해서 학과장을 만났을 때, 대학 선배이기도 한 그 교수가 한 말이, 유학에서 막 돌아온 사람들은 자기들 학교 다닐 때 생각은 안 하고, 유학 생활만 생각해서 너무 의욕이 앞선다는 것이다. 느낀 바가 참 컸다. 그래서 강의 계획도 엄청난 수정을 기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싫어했던 교수를 생각해 보면, 0. 첫날 첫시간 수업하는 교수, 1. 시험도 보고 리포트도 내라고 하는 교수 2. 출석 꼬박꼬박 부르는 교수, 3. 과 MT나 뭐 이런 행사에도 절대 수업 안 빼주는 교수, 4. 수업 휴강하면 기분 좋게 할 것이지 꼭 토요일날 보강하는 교수, 5. 성적 짜게 주는 교수 등등이다.

 

그런데, 내 계획을 보면 시험도 리포트도 있고, 출석도 꼬박꼬박 부르며, 4월 둘째주에 휴강 예정인데, 보강을 할 생각이다. 첫 날 첫 시간은 지난 수요일이었는데, 과목의 개요 등을 소개하며 3-40분을 떠들었던 것 같으니 거의 수업 한 것과 다름이 없다. 가르쳐야 할 내용을 생각해 보면 한 시간 한 시간이 바쁘다.

 

그런데 오늘 과대표라는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주 금요일날 과 MT를 가는데, 수업을 빼달라는 전화였다. 예전에 아리랑 공연하느라, 강의실을 사용해야 하니 수업을 빼달라고 우리 기획팀들이 교수 찾아 다니던 생각이 난다. 교수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과 MT 때문에 수업을 빼라니... 그러나 짐짓 황당한 내색을 하지 않고, 그냥 다른 시간으로 수업을 옮겨서 할 수 있으면, 옮기고, 그렇지 않으면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MT를 왜 금요일날 가지? 그것도 3시부터 6시인 수업을 빼가면서?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수업을 못 빼겠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당연히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교수의 입장과 학생의 입장에 정말 큰 차이가 있겠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되도록이면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일반 회사에서 강의를 하면, 사람들은 곧 내 스타일에 익숙해져서, 세 번째 시간쯤 되면 크게 웃으면서 재미있게 듣는다. 일부 여직원들은 수업중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다는 애교성 멘트를 하기도 하는데... 학교 강의는 세대 차이 때문인지 아직 별로 웃지 않는다. 더군다나 일반 회사에서 강의를 할 때 조는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데, 지난 수업 시간엔 5-6명 (10%!)이 졸았다. 아... 학생들 조는게 다 보이는 구나.

 

물론 나는 수업 시간에 존 경험이 거의 없다. (대부분 안 들어가지.) 하지만 어린 학생들 입장에서 얼마나 졸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연히 중앙대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데, 중대 학생들로 보이는 남학생 넷이서 깐풍기와 고량주를 먹으면서, 역시 음주 수업이 최고야... 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 학교 생활이 연상되었다. 그 중 한 학생 왈, 모모 교수 수업이 다 웃기더라. 군대 갔다 온 뒤로 우리 수준이 너무 낮아졌어. 별걸 가지고 다 웃기다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건대 학생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늘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보면,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하려고 하는 내 방식이 적절하지 만은 않다는 생각도 해 본다. 중요한 협상과 계약에서 늘 상대방을 생각하다가 유리한 고지를 뺐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늘 남을 먼저 배려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내 인생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은 학생들 너희를 위해서 수업을 빼지 않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린 그러한 논리에 얼마나 많이 당해왔던가? 휴... 금요일 수업을 빼야 하나?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는 사장들에게 연민을  (0) 2013.10.23
살아 남은 자의 슬픔  (0) 2013.10.06
Death Valley  (0) 2012.08.06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0) 2012.08.06
같은 것에 대한 공포  (0) 2012.08.06

Death Valley

2012. 8. 6. 21:11 | Posted by 이 재용

[2002-4-14 작성]

Death Valley (지도)

Sand Dunes
Sand Dunes


빌 린 자동차는 여태 100마일 정도(160km) 달린, 아직 번호판도 달지 않은 새 차였다. 아침 일찍 8시 30분쯤 출발해서 95번을 따라 달려 Beatty에서 374번으로 꺾었다. 앞뒤로 차가 보이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 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 auto-cruise를 걸어 놓고 달리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운전대도 그냥 형식적으로 잡고 있기만 할 뿐.
라스베가스 는 이번이 두 번째다. 화려한 호텔의 인공적인 장식들은 신기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을 그리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 가는 Death Valley는 처음이기도 할 뿐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도 나를 설레게 한다. 다만 적절한 음악 CD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곳을 먼저 가 보고 추천한 김 경아씨가 가면서 들었다는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을 공항에서라도 샀어야 하는건데...
차를 달리면서 저 앞쪽 길은 물에 젖은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말라 있고, 또 저 앞에 물이 있는 것 같은데 가보면 말라 있었다. 이런게 '신기루'인가?

Hells Gate에서 본 374번 도로제 일 처음 들린 곳은 'Hells Gate'라는 곳으로 374번 도로 중간에 있다. 여기에 지도와 화장실이 있으며 unique vista를 제공한다고 한다. 잠시 쉬다가 계속해서 374를 따라 남으로 내려와 190을 타고 Panamint Springs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Death Valley의 Top 5안에 든다고 할 수 있는 Sand Dunes를 보다. 사막을 휩쓸고 다니던 바람이 속도가 늦어지는 장소다. 바람의 속도가 늦어지면 같이 다니던 모래들은 할 수 없이 땅에 가라 앉아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Sand Dune이다. 낮에도 그 완만한 곡선과 그 곳에 반사된 빛깔이 아름답지만, 설명서 대로 달빛에 본다면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 Sand Dune을 지나면 Stovepipe Wells라는 마일이 나오고 이 마을 바로 옆에 Mosaic Canyon이 있다. 비포장 도로이긴 한데, 들어가 볼 만하다. 암석이 깎여 대리석처럼 느껴지도록 맨들맨들해진 곳이다. 나는 여기서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다가 계속 190을 따라 남서쪽으로 내려갔다.
Salt Creek도 비포장이긴 하나, 그리 심하진 않다. 걸어서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만들어져 있고 바닷물만큼 짠 시냇물에서 산다는 desert pupfish를 볼 수 있다.
190 을 계속 따라 내려오면 Furnace Creek이 나오는데, 이곳이 인근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 한다. 종합 관광 안내소에서 Slide Show도 보고, 박물관도 구경하고, 기념품도 샀다. 기름도 넣었는데, 갤론당 $2.30이나 한다. (보통은 $1.20 정도)

Badwater 전경 정작 Furnace Creek 자체는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곳을 지나 178로 빠져서 곧장 Bad Water로 향했다. Golden Canyon, Aritst Drive, Golf Course는 올라오면서 볼 작정이었다. 경치로 말하자면 다른 곳 만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특별한 느낌을 준 곳이다.
바다와 이곳 Badwater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물이 더 이상 흘러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곳으로 더 흐를 수 없는 물은 고여서 증발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꾸 증발이 되면 물 속의 염분 농도가 높아져서 짜지는 것이다. 따라서 바닷물도, 이곳 Badwater의 물도 모두 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물도 많이 흘러 들어오지 않고, 또 증발도 빨리 되기 때문에, 눈으로 그냥 보기에 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통 하연 소금의 바다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먼 곳까지 혼자 나가 사방을 둘러보다 주저 앉았다.
언제나 바다는, 내게 쉬는 곳이었다. 산속 숲에서 이슬로 시작했든, 들녘에 내리는 비로 시작했든 땅에 내려온 물들이 시내로, 지하수로, 수돗물로, 하수로 그렇게 갖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가 큰 강을 이루고, 강물이 천천히 흐르다가 물이 모두 모여 쉬는 곳이 바다가 아니었던가? 세상의 좁은 근심과 옹졸함과 인색함을 버리고 하해와 같은 큰 마음이 되는 곳이 바다 아니었던가? 바다를 그렇게만 생각하던 나에게, 오늘 이 곳 Badwater는, 바다가 물의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이 더 이상 흘러갈 수 없는 곳이 바다다. 그래서 짜지고 뒤틀리는 곳이 바다다.
무덤으로 온 물 중에 일부에게는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환생의 장소가 바다이지만, 일부에게는 수천 미처의 심연에 잠겨 차디찬 온도와 가혹한 수압을 영겁의 세월동안 견뎌야하는 지옥의 장소가 바다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거다. 나는 이제 새로운 의욕이 필요하다. 지금 읽고 있는 Alan Cooper의 '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 책이 나를 더 자극해 주고 있다. 그래, 세상을 바꾸자.
사방을 둘러보니 온 세상에 눈이 온 것처럼 하얗게 소금이 쌓여 있다. 땅을 조금만 파 보면 물이 고이는 것으로 보아 굳은 소금층 아래에는 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수면 보다 279 feet 아래, 즉 해발 -85m의 낮은 곳이며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이곳에서 세상을 다시 보다. 이미 한참 멀어진 저 쪽 도로에는 아직도 내가 세워둔 자동차와, 멀리 오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산맥의 발자락에 아른거리고 있다.
다시 북쪽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Natural Bridge, Devil's Golf Course, Golden Canyon 등을 보았다. 그 중 인상 깊은 것은 Artist's Drive 도중에 있는 Artist's Palette이다. 형형 색색의 물감을 산 위에 발라 놓은 듯한 풍경인데, 갖가지 광물이 불균등하게 뒤섞였기 때문이란다. 참 적절한 이름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볼 때가 가장 아릅답다고 할 수는 없겠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처음 사람들이 주차하고 구경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palette가 아니다.)

자브라스키의 전경다 시 190을 타고 동남쪽으로 내려와 자브라스키 포인트에 오르다. 이 때가 대략 오후 5시 경이었는데 해질녘의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Tracking 코스로는 Golden Canyon에서 이곳 자브라스키 포인트까지 연결되는데, 자동차로는 많이 둘러온 셈이다. 언덕에 올라 앞을 내다보면 복잡하고 날카로운 산들이고, 뒤를 돌아보면, 따뜻한 저녁 햇살을 받아 하품을 하는 듯한, 황색 구릉이다. 우리 나라의 모듯 것에 비해 서양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실 구릉이라고 하기에는 굴곡이 좀 더 심하고, 윤곽이 뚜렷하고, 저녁 햇살에 명암이 분명하다.

단테에서 본 Badwater지 는 해를 보며 약간은 조급한 마음으로 Dante's Peak를 향하다. 이곳은 지는 해에 보기에는 좋지 않은 듯 하다. 한 낮이나 아침녘에 오히려 잘 보일 듯 한데, 세숫대야처럼 움푹 들어간 Death Valley 전체를 보려면 광원이 좀 더 높은 곳에 있거나, 적어도 등 뒤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능선을 따라 더 내려가 보면 좀 더 넓은 지역을 볼 수 있다. 이 곳이 좋은 이유는 Death Valley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 오는 길은 190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Death Valley Junction에서 127을 타고 북쪽으로 통하는 길로 잡았다. 이렇게 하면 373을 통해 Lathrop Wells로 가서 95와 합쳐져 다시 라스베가스로 갈 수 있게 된다. 이제 밤이 어두워져 앞뒤 분간이 잘 가지 않지만 길은 근 한시간을 달리도록 커브가 없다. 2차선의 도로인데도 75mph가 (120km/h) 제한 속도다. 80 쯤으로 계속해서 달리다 가끔씩 길 주변에 사람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라스베가스 근교에서 저녁을 대충 때운후 호텔로 돌아왔다. 약 13시간에 걸친 Death Valley 여행이 끝났다. 이것으로 이번 여행의 목적도 달성한 셈이다. 출장 본연의 목적이었던 전미 방송 협회의 전시회인 NAB... NAB? 천천히 보지 뭐.

Death Valley 공식 사이트(http://www.americansouthwest.net/california/death_valley/national_park.html)

---
수르야 답글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볼 때가 가장 아릅답다고 할 수는 없겠다."

 

아리랑 게시판에서 글을 읽다 보면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생각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제법 자주. 큰 즐거움!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정보를 대하는 순간 재용이의 머리 속에는 수없이 다른 방향에서 벽을 바라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떠올랐을테고 그 각자 사른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 공정한 판단의 권리를 주고 싶어하는 착한 마음이 자극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을 모두 나름대로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해야만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성질의 사물을 대하는 것 자체로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것조차 느껴진다. 

다양한 관점의 가능서 중에서 그래도 자신이 본 것을 가장 아름다왔을 것이다 주장하는 대신에 타인의 관점을 제한하지 않는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살며 이렇듯 남에게 나와 똑같은 판단의 권리를 주고 그것을 내 것과 같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 알고 있으리라.

 

평균적인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서에 실린 그저 하나의 정보일 뿐이었을텐데삶의 성찰로 익어진 한 인간의 상념이란 과정을 통과하고 나온 Output이 눈부시다.

 

생각이란 한 끝을 뒤집는 것으로 전혀 다른 차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한 끝을 자유자재로 뒤집을 수 있는 가벼움을 얻기가 그리도 힘든 것이다.

 

그런데 재용아 네 아바타가 팔에 두르고 있는 완장에는 뭐라고 적힌거니

내가 보기에는 NL이라고 적힌 것 같은데

네 비당파적인 글에 비해 아바타가 너무 당파적인 의상과 자세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김상희 답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해.

재용이의 글을 읽으면서 재용이 특유의 느린 듯한, 약간 끊길 듯 끊길 듯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래서 끝까지 듣게되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아주 기분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 게다가 재용이의 얼굴도 생각이 나는군. 그 모습...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남은 자의 슬픔  (0) 2013.10.06
교수 생활  (0) 2012.08.06
아시아의 자부심 Pride of Asia  (0) 2012.08.06
같은 것에 대한 공포  (0) 2012.08.06
서비스란 무엇인가?  (0) 2012.08.0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