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이 재용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2013. 12. 26. 01:55 | Posted by 이 재용

아빠는 산타를 믿느냐?

샤워를 하다가 큰아들이 물었다.(큰아들은 자기가 샤워할 때 내가 옆에 있어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걸 매우 좋아한다) 아주 짧은 갈등 끝에, 나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선물이 와 있는 걸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다시 묻길래 또 잠깐 갈등 끝에,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아들은 나에게 예를 들어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할머니는 가족이 다같이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시면서 '이 모든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느냐? 아빠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부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 앞에는 음식이 있고, 할머니가 그 음식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더니 녀석은 종교 이야길 물었다.

아빠는 제가 종교가 있으면 좋겠어요?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종교가 없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빠는 저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까 더 많이 알거 아니예요?' '흠... 세상엔 더 오래 살아도, 더 많이 배워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종교 같은거' 그 때쯤 아들은 샤워를 끝냈다.

예전엔 아이가 생기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얘기해 주리라 믿었다. 예를 들어 산타 같은 환상을 갖게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종류의 사고 방식을 처음부터 갖지 않도록. 그런데 요즘은 되도록이면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놔두려고 한다. 스스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그러다보면 문제는, 때로는 내 신념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애매하게 얼버무리거나 괴변을 늘어놓게 된다.
좋아요 ·  ·  · 5분 전 서울특별시 근처 ·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자생존  (0) 2014.02.26
언니야 반말  (0) 2013.12.26
산타클로스와 레고 기차  (0) 2013.12.26
아버지  (0) 2013.11.22
내 몸에게 경고한다  (0) 201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