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작성]
간혹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겨우 명절에야 찾아뵈었던 해운대 집에 가 현관문을 열어 보면 웃으며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가끔씩 올라 오셔서 맛있게 사 주시던 상도동 자취집 앞 청국장 식당에 가 보면 계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함께 망망 대해 한 가운데서 낚시 하면서 이야기하던 거제도 앞바다에 계실 것 같기도 하고...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시길래... 돌아가신지 3년이나 됐건만 아버지에 대해 두 세줄의 글을 쓰자마자 이렇게 눈물이 흐르게 만드시는 걸까...
쿨딕(www.cooldic.com)에 보면 누가 아버지를 '귀없는 벽'이라고 정의했더랬다. 정말 그랬다. 누구보다도 깨어있고 시대를 앞서간 분이셨지만, 나에겐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적어도 20대까진 그랬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30대가 되면서, 아버지는 점점 나에게 의지를 하는 분이셨다. 내 판단을 기다리는 분이셨다. 이제 나도 곧 자식을 갖게 될텐데, 이제 30대 중반이 넘어서 드는 내 생각은... 과연 그 분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돌아가신지 1년 동안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울었다.
장례를 서울에서 치르고 한 동안 어머니는 해운대 집으로 내려가시질 못 했다. '거길 어떻게 가냐... 아버지가 거기 계신데... 모든 물건 집 앞 길 옆의 풀들에도 계실텐데...' 그러시면서 두 세달이나 내려가질 못 하셨다. 해운대로 돌아가시고 난 뒤 처음으로 내가 집사람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심으셨던 마지막 상추라며 상에 내 놓으셨다. 집 앞 텃 밭을 일구어 항상 무농약의 건강한 채소들을 기르셨던 아버지. 자식들이 서울에서 내려오면 그것들을 캐어 맛있는 반찬이 되도록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그 텃밭 앞의 쇠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시며 웃으셨다... 아버지는 거기 계셨다.
돌아가신지 6개월쯤 되었을까?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다가... 큰이모께서 '너희 아버지가 이 모밀 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셨는데...'라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버지는 항상 참치를 우려낸 모밀 국수 국물을 공장에서 얻어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자식들이나 손님이 오면 어머니가 국수를 삶아 함께 먹도록 하셨다. 언제나 부지런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애쓰셨다. 외가 식구들은 모두 모밀 국수를 보자 아버지를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유쾌한 분이셨다. 식구들은 늘 아버지를 떠올리려면 웃으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즐거운 추억만 주고 가셨기에, 그 분 생각을 하면 즐거우면서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시는 날은 아버님의 생신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병실에서 아버지 케익을 사다 드리고, 즐겁게 노래 부르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단란한 시간을 보낸 그 날 오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돌아가신 날의 기억도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우리의 즐거움 한 가운데 계셨다.
간암 판정을 받으셨지만, 빨리 낳아서 다시 술 담배를 재개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그 때는 아직 결혼 전이었던 아내가 상황 버섯 다린 물을 보온병에 가지고 왔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그 때 처음 상황 버섯이 암에 좋다는 것도 알았는데,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말 상황이 암에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며느리감이 정성들여 상황을 고르고, 다려서 보온병에 담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신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2주년이 되던 지난 달에...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싸운 일도 많고 안 좋았던 일들도 없진 않았자만 그래도 이 세상에 너희 아버지 만한 분이 없는 것 같다. 그 분과 함께한 일 평생이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고 생각한다'시며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 모두 또 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2년 동안 꺼내지 못했던 임종 당시의 상황을 처음으로 다시 되돌리면서 우리 가족들은 또 울다가 웃다가 했다. 그런 때 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만 같다.
설이 또 다가온다.
우리 식구들이 모이면 아마 아버지는 다시 거기에 계실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꼭 한 번 그 품에 다시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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