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이 재용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2012. 8. 6. 20:19 | Posted by 이 재용

[2005년 2월 작성]
간혹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겨우 명절에야 찾아뵈었던 해운대 집에 가 현관문을 열어 보면 웃으며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가끔씩 올라 오셔서 맛있게 사 주시던 상도동 자취집 앞 청국장 식당에 가 보면 계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함께 망망 대해 한 가운데서 낚시 하면서 이야기하던 거제도 앞바다에 계실 것 같기도 하고...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시길래... 돌아가신지 3년이나 됐건만 아버지에 대해 두 세줄의 글을 쓰자마자 이렇게 눈물이 흐르게 만드시는 걸까...

쿨딕(www.cooldic.com)에 보면 누가 아버지를 '귀없는 벽'이라고 정의했더랬다. 정말 그랬다. 누구보다도 깨어있고 시대를 앞서간 분이셨지만, 나에겐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적어도 20대까진 그랬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30대가 되면서, 아버지는 점점 나에게 의지를 하는 분이셨다. 내 판단을 기다리는 분이셨다. 이제 나도 곧 자식을 갖게 될텐데, 이제 30대 중반이 넘어서 드는 내 생각은... 과연 그 분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돌아가신지 1년 동안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울었다.

장례를 서울에서 치르고 한 동안 어머니는 해운대 집으로 내려가시질 못 했다. '거길 어떻게 가냐... 아버지가 거기 계신데... 모든 물건 집 앞 길 옆의 풀들에도 계실텐데...' 그러시면서 두 세달이나 내려가질 못 하셨다. 해운대로 돌아가시고 난 뒤 처음으로 내가 집사람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심으셨던 마지막 상추라며 상에 내 놓으셨다. 집 앞 텃 밭을 일구어 항상 무농약의 건강한 채소들을 기르셨던 아버지. 자식들이 서울에서 내려오면 그것들을 캐어 맛있는 반찬이 되도록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그 텃밭 앞의 쇠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시며 웃으셨다... 아버지는 거기 계셨다.

돌아가신지 6개월쯤 되었을까?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다가... 큰이모께서 '너희 아버지가 이 모밀 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셨는데...'라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버지는 항상 참치를 우려낸 모밀 국수 국물을 공장에서 얻어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자식들이나 손님이 오면 어머니가 국수를 삶아 함께 먹도록 하셨다. 언제나 부지런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애쓰셨다. 외가 식구들은 모두 모밀 국수를 보자 아버지를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유쾌한 분이셨다. 식구들은 늘 아버지를 떠올리려면 웃으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즐거운 추억만 주고 가셨기에, 그 분 생각을 하면 즐거우면서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시는 날은 아버님의 생신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병실에서 아버지 케익을 사다 드리고, 즐겁게 노래 부르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단란한 시간을 보낸 그 날 오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돌아가신 날의 기억도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우리의 즐거움 한 가운데 계셨다.

간암 판정을 받으셨지만, 빨리 낳아서 다시 술 담배를 재개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그 때는 아직 결혼 전이었던 아내가 상황 버섯 다린 물을 보온병에 가지고 왔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그 때 처음 상황 버섯이 암에 좋다는 것도 알았는데,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말 상황이 암에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며느리감이 정성들여 상황을 고르고, 다려서 보온병에 담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신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2주년이 되던 지난 달에...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싸운 일도 많고 안 좋았던 일들도 없진 않았자만 그래도 이 세상에 너희 아버지 만한 분이 없는 것 같다. 그 분과 함께한 일 평생이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고 생각한다'시며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 모두 또 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2년 동안 꺼내지 못했던 임종 당시의 상황을 처음으로 다시 되돌리면서 우리 가족들은 또 울다가 웃다가 했다. 그런 때 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만 같다.

설이 또 다가온다.

우리 식구들이 모이면 아마 아버지는 다시 거기에 계실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꼭 한 번 그 품에 다시 안겨보고 싶다.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하시는가? 불멸의 게임 Prince of Persia!  (0) 2012.08.06
내가 정하는 올림픽 순위  (0) 2012.08.06
민요연구회 음반[펌]  (1) 2012.08.06
대학우수창작극 대본선  (0) 2012.08.06
아리랑 소식  (0) 2012.08.06

이전/다음 버튼은 화살표와 함께 씁시다

2009. 7. 13. 15:01 | Posted by 이 재용

혹시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 토론장  2004/07/01 11:49
 
락필(deathrock)   http://cafe.naver.com/ux/528
 
[질문 요약] 
게시판 목록 번호가 있거나, 게시판이 번호가 없을 때,

이전글은 어느것?
다음글은 어느것?

이전글은 윗글에 해당? 아랫글에 해당?
다음글은 윗글에 해당? 아랫글에 해당?

 

======================================================================================

이전/다음 버튼은 화살표와 함께 씁시다.

일단 이 문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였으나, 최근에는 어느 정도 암묵적인 합의하에 다음과 같이 결론이 났다고 봅니다. (저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결론은 아래 그림과 같이 '이전' 혹은 '다음' 메뉴에 위/아래 화살표를 병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지금까지의 결론이고 왜 최선이 아닌지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

먼저 왜 게시판에 번호가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봐 주기 바랍니다.

게시물의 번호는 인간에게 어떤 정보를 주나요? 키보드로 입력하여 게시물을 선택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즉 예전 PC 통신 시절이나 모바일 같은 화면이 아니라면) 게시물의 번호는 인간에게 별 도움이 안됩니다.

게시물의 번호는 일종의 menu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메뉴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입력(번호)과 출력(게시 내용)을 분리하였다는 것이죠. (Menu decouples the functions of input and display, from Menu-driven Systems by Lee & Raymond, 1993)

또한 프로그래머에게 게시물 번호는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덱스이기도 했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야, 어디 게시판 들어가서 2120번 게시물 읽어봐. 그것 때문에 난리났어"라고 할 정도로 기억되는 효과도 있었구요.

그러나 키보드 보다는 마우스로 직접 클릭하는 것이 더 익숙한 시스템이 되면서 게시판 번호는 이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전히 나온다면 (위에서 말한 예외적 상황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별 생각없는 기획자의 습관이거나, DB oriented된 개발자의 강압이겠죠.

그런 폐해는 이 네이버 카페 게시판의 게시판 번호를 보면 잘 나타납니다.

(네이버 카페는 정말 잘 만들어 졌습니다. 누군지 한 번 만나보고 싶지만) 단지 게시판 번호 부분만 보면, 게시판 번호는 게시판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가지로만 생성이 되다 보니까 (게시판 간에 게시물을 자유로이 옮기려면 db는 하나만 있어야 겠죠?) 어느 한 게시판에 들어가서 게시물 번호를 보면 '흠... 게시물 번호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극명하게 들게 하죠.

하여간 게시물 번호를 없애 본다면, 어떻게 되냐면 아웃룩 익스프레스에 메일 목록처럼 될 겁니다. 아니면 주소록 처럼 될 수도 있고요.

이 상태에서 아웃룩은 편지가 온 순서, 보낸 사람 이름 순, 편지 제목 순 등으로 다양하게 정렬(sorting)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순서의 역순도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이나 '다음'에 무언가 뜻을 부여한다는 시도가 허망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A 버튼과 B 버튼이 필요한데,

A : 현재 게시물들이 정렬되어 있는 상태(시간이든, 다른 무엇이든, 아님 그것의 역순이든)에서 시각적으로 그 게시물 윗쪽 혹은 왼쪽에 있는 것 보기

B : 현재 게시물들이 정렬되어 있는 상태(시간이든, 다른 무엇이든, 아님 그것의 역순이든)에서 시각적으로 그 게시물 아랫쪽 혹은 오른쪽에 있는 것 보기

그렇다면 A와 B는 어떻게 디자인 되어야 할 까요? 먼저 위쪽 아랫쪽 화살표가 들어간다면 의미가 분명해 지겠죠. 그리고 레이블링은 어떻게 할까요? '위'  or  '위 게시물'  or  '위 게시물 보기' 등 주어진 상황과 워칙, 가이드에서 여러 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레이블링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짧게 하려고 하니까,

잠정 결론 1: 위쪽 화살표와 함께 '위' 라고 레이블링 한다.

위의 결론을 채용한 경우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의미상의 혼란이 생깁니다. 무얼 위로 올린다는 것인가? 즉, 위에 있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위로 올리는 것과 헷갈리는 거죠.

잠정 결론 2: 위쪽 화살표와 함께 '이전'이라고 레이블링 한다.

화살표와 이전은 서로 앞뒤가 안 맞긴 하지만, 화살표는 진정한 의미를, '이전'은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익숙한 레이블을 가져와서 하려는 기능을 암시하여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리가 한 쪽씩 밖에 없는 두 사람이 어깨 동무하고 간신히 서 있는 상태랄까요?

하여간 현재 업계는 여기에서 만족하고 정착한 듯이 보입니다.

누군가 좀 더 명확한 그림과 레이블링을 만들어 의미를 두 배로 강화시키는 것을 만들 때까지 말이죠.

---------------------------------------------

 

게시판 숫자가 사람에게 전혀 효용이 없다고 했는데, 사내 토론에서 몇 가지 효용이 생각났다.

 

1. 게시판의 크기를 보여준다. 숫자가 20이냐 20000이냐에 따라 게시판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에 살짝 들여다 봐서 점심시간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으면 들어가기 불안해지는 것 처럼, 게시판의 숫자는 이런 척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게시판 개발자들이 좀 더 정확한 social activity indicator를 만들어 주길 7년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그걸 알면서 왜 안 만들고 있느냐고? 흠...)

2. 시각적인 bullet이 될 수 있다. 불릿의 효용은 수직적 안구 운동의 연결점이자 수평적 안구 운동의 '닻'이다

3. 개발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개발팀 전체에 '평화'를 준다. 괜한 고집으로 불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하던대로 하자. UI 개발 원칙 중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남들 하는대로 하라'일 것이다.

이상의 효용이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안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또한 특정 상황에서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네이버 카페 게시판처럼, 게시판 형태에서만 보여지고, 블로그 형태나 웹진 형태에서는 사라져 버리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

 

pxd에서 초급 UI 디자이너를 모집합니다. 아래 참고 바랍니다.

http://cafe.naver.com/ux/475

 


'디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텍쥐페리  (0) 2013.11.24
회사이름 고민  (0) 2012.08.06
과일과 UI  (0) 2009.07.13
불편하게 만들자 1  (0) 2009.07.13
생텍쥐페리  (0) 2009.07.13

과일과 UI

2009. 7. 13. 14:56 | Posted by 이 재용

2004/4/10

진화론자인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누군가 이 세상을 창조한 설계자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재미난 일이다.  

간혹 회사 직원들과 각종 먹거리의 UI를 토론해 보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게’ 같은 경우는 너무 맛있는데 왜 그렇게 먹기 힘들게 만들어졌을까? 한 번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포장되어 있고, 그 안에 두 가지 다른 맛이 들어있는데다가 영양소도 풍부하다니 ‘달걀’ 같은 것이 가장 좋은 것 아닐까? 더군다나 운반/보관을 위하여 세로 방향은 강하게 만들어 졌고, 요리를 한 손으로 할 정도로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가로 방향은 약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반적인 먹거리는 설계자가 처음 설계할 때 본연의 목적이 ‘먹히는 데’ 있지 않기 때문에 토론이 진지해 지기는 힘들다. 그런데 유독 과일은 일단 동물에게 ‘먹힘’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므로 더욱 치열한 논의를 할 수 있는데, 본질 가치인 ‘맛’과 ‘영양’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는 UI에 관한 것이므로 과일들을 UI 측면에서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 사람에게 쉽게 먹힐 수 있는 UI 를 갖고 있는 과일은 무엇인가?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UI 를 UI 자체로 보지말고, 좀 더 넓은 Context, 혹은 사회적 환경에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원시 시대를 상상해 보면 아무래도 사과 같은 과일이 가장 좋은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벗길 필요도 없고, 씻을 필요도 없이 나무에서 따서 바로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사과향… 아마 성서에도 그런 이유로 사과가 등장한 것이 아닐까?

아예 껍질이 존재하지 않는 딸기도 마찬가지이나, 메추리알과 딸기 같은 정도 크기의 먹거리들은 항상 먹기 위한 수고에 비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과하나를 따는 노력이나 딸기 하나를 따는 노력이나 비슷한데, 사과는 따고 나면 간단한 간식 정도는 되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딸기는 운반 도중 망가지는 경우도 흔하다. 껍질이 없기 때문이다.

얇은 껍질의 감도 마찬가지. 특히 홍시 같은 경우나 참외 같이 껍질 안의 것이 줄줄 흘러 내리는 경우… 도구 없이 먹다간 품위를 잃는다.

그러나 오늘날 각종 공해와 농약의 우려가 넘치는 시대 환경에서 껍질째 혹은 껍질 없이 먹는다는 것은 별로 매력적이지 못 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 두꺼운 껍질이 존재해야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박이나 메론 같은 경우 껍질이 너무 튼튼하다 보니 매우 강력한 ‘힘’이나 ‘칼’ 같은 도구가 없이는 먹기가 힘들다. 튼튼한 껍질은 운반에서 용이하지만 반대로 먹기 불편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박은 한 덩이의 크기가 너무 커서 핵가족화한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족 조차도 한 번에 한 덩이를 소화하기 힘들다.

벗기기 쉬운 껍질을 가진 것으로는 바나나가 있다. 바나나는 노란색으로 길죽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작은 입을 가진 사람도 적당량씩 먹을 수 있게 편리하게 설계 되어 있다. 또한 껍질의 색이 파란색 -> 노란 색 -> 검은 점 무늬 등으로 익은 상태에 따라 변하는 인디케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허 출원 감이다. (하이트 맥주 캔에 가장 맛있는 온도를 표시하는 부분도 특허다) 한 쪽은 뭉툭하지만, 다른 한 쪽은 ‘꼬다리’가 있어서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된다. 꼬다리 부분부터 껍질을 벗기는 사람은 이 꼬다리를 Opener로 활용하는 사람이고, 반대쪽부터 껍질을 벗기는 사람은 이 꼬다리를 손잡이(Handle)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물론 Opener로 쓰고 나면 나중에 끝부분을 쥐기가 좀 불편하고, Handle로 활용할라 치면 처음 껍질을 까기 시작할 때 다소 불편하다. 유학시절 지도 교수 포함 학생들과 이 문제로 우연히 잡담하던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Opener로 사용하고 있어서 Handle로 사용하는 나로서는 좀 놀란 적이 있다. 당신이 조물주였다면 이 꼬다리는 Opener로 설계했을 것 같은가? 아니면 Handle로 설계했을 것 같은가?

오렌지는 바깥 포장 안에 개별 포장이 되어 있어 먹다가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전체를 까지 않고 반만 깐 다음 반을 먹기도 좋다. (물론 맨 겉쪽은 약간 마르긴 하지만) 가장 좋은 경우는 두 사람이 나누어 먹을 때, 개별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도구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다. 바나나의 경우 혼자서 조금씩 나눠 먹기는 좋아도 둘이 나눠 먹기는 불편하다. 바나나 하나를 나눠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껍질을 까지 않은채 뭉개어 나눠야 하는 불편함을…

그런데 오렌지의 껍질은 손으로 쉽게 까기에는 약간 두꺼운 감이 있다. 그래서 내가 뽑은 최고의 과일은 귤. 물론 맛을 제외하고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다. 일단 상품을 보호하는 껍질 – 까기 쉽고, 조금만 익숙해 지면 상품 내부의 상태 (익었는지, 상했는지)를 그럭저럭 알 수 있고, 또한 내부에 개별 포장 되어 있어서 시간을 두고 나눠 먹기나, 동료와 나눠 먹기 편하다. 물론 과대 포장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 있으나, 먹을 수 있는 포장이라는 면에서 용서가 된다. 속포장재가 약간 맛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개선해야 한다면 속포장재에 달라 붙는 겉포장재의 잔재 – 흰 줄무늬를 좀 없도록 하면 좋겠다. 물론 심심할 떄 그것을 뜯어내 가며 먹는 재미는 있지만서도.

 

당신이 생각하는 ‘먹기 쉬운’ 과일은?


'디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사이름 고민  (0) 2012.08.06
이전/다음 버튼은 화살표와 함께 씁시다  (0) 2009.07.13
불편하게 만들자 1  (0) 2009.07.13
생텍쥐페리  (0) 2009.07.13
혁신과 사용성 옹호자  (0) 2009.07.13